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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수양록 2년 2개월

십년 전 병영일기를 보다-2002년 9월 마지막 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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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 쌀쌀한게 살기 좋은 날씨입니다.

추석도 다가오고 말입니다.


가을이라는 계절 특성상 생각도 많아지고 쓸쓸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잉여스러운 저에게는 딱히 할 일 없을 때 펼쳐 보는 것은 군대에서 썼던 병영일기입니다.


2002년 9월 27일 금요일 179일 남음

새벽.. 점점 소심 해지고 있는 내가 보인다. 

무엇이 나를 소심하게 만드나? 지금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이 나를 짜증나게 한다. 참아야 하나?

과연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제대가 약이다!

그냥 못 들은 척 하고 못 본 척 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그것이 나를 살리는 법이다.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그런다.

언제 돌아가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돌아가셨단다.. 허무하다..


2002년 9월 30일 월요일 176일 남음

하루종일 왔다갔다.. 그냥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10년 전 이때 쯤에는 철책선 근무에 투입되어 있었습니다.

11년 전 여름  GOP에는 자대 전입 온지 100일도 안된 이등병으로 투입해서 100일 휴가도 갔다오고 밤새도록 네버엔딩 갈굼도 당하고 근무때 사수도 잡아 보고.. 그랬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속 반복되는 전방 생활은 지루하기도 했고 3일 간격으로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근무 시간 동안에 일정시간이 되면 초소를 이동하면서 근무를 서서 심심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을 투입되어 있는 기간 동안 반복한다면 솔직히 지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아무리 철책선 너머 풀숲을 보면 괜히 뭔가 움직이는 것 같고 헛것도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근무를 서다보니 청각도 많이 발달되어 귀가 예민해졌던 것도 같습니다.

아 GOP얘기는 검색해 보면 많이 나와 있으니 살짝 줄이고...


10년 전 투입했을 때에는 11년 전과는 좀 많이 달라졌습니다.

곡괭이질이 제일 재미있었던 한참 서열이 풀릴려고 하던 그 시점에 중대 행정병으로 가서 고생문이 열렸거든요.

이것저것 나름의 임무를 다하고 전방에 투입되었을 때에는 소대에 있을 때 보다 좋은 점은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소대 때 보다 넓었다는 겁니다.

중대 섹터가 다~ 제 섹터였기에 섹터 한번 돌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거든요.

군생활이 훅~ 훅~ 갈거라 생각했는데. 태클이 은근 많이 깔려 있었기도 해서 말년의 고달픔이 시작되었던 배경이기도 했습니다.

그것보다 십년 전 오늘은 인생에 있어서 기억에 꼽는 날 중에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전방투입해서 저보다 일년 훨씬 늦게 입대 한 친구의 소식을 묻기 위해 친구 동생한테 전화를 했더니 울먹이면서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는 겁니다.

위로의 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게 되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그 시간에 저는 GOP선발대로 투입해서 섹터에 널려있는 재산목록 파악하고 있었거든요.

인생이 무엇일까?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가시는 길 옆에 못 있었던 것도 참 죄송스러웠었습니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되고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안있으면 잊혀지지요. 


멍하니.. 아침에 일어나면 얼른 시간이 지나서 저녁이 되고..

하루하루 흘러가서 주말이 오길 바라게 되지요.

십년 전에도 그랬고 요즘도 그렇네요.


10년 전 병영일기를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허접하기 그지 없습니다.

새삼 허접함을 깨달았으니 마음가짐 바로잡고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다음 번에 쓰는 병영일기를 쓸 때에는 좀.. 버라이어티한 하루를 보내고 있길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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