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
배울 學
밭 田
그렇게 배우는 밭이란 뜻을 가지고 시작한 그 곳은
아마도 배우들이 배우는 장소였던 것 같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잡초도 뽑고 약도 주고 열심히 키우고
가을에 수확을 하고
겨울에는 그 다음 해를 준비하는 지루하면서
티가 나지 않는 것을 그 장소 그 사람들은 반복하고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때 그 학전에서 배웠던 그들은
지금도 방송이나 영화 혹은 무대에서 아직도 왕성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학전이란 곳이 처음 생겼을 그 시절 대학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곳에서 배웠던 가수, 배우 들은 그 당시 생각 조차 하지 못했던 월급도 받는 등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랬던 그 시절이 학전의 전성시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학전출신 배우들이 학전을 떠나서 각자의 전성기를 향해 가고 있는 동안
학전이란 곳은 조금씩 나이가 들었던 것 같다.
물리적인 소극장도 낡아졌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예전보다 줄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래도 김민기 연출이 있어서였을까?
학전은 여전히 빛을 내면서 존재했던 것 같았다.
김민기 연출이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 들렸고
학전을 응원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결국 폐관을 했다.
학전이 있던 그 자리는 꿈밭극장이란 곳으로 바뀌었다.
한쪽 벽에는 여전히 익숙한 동상(벽화?)가 있었다.
간판은 조금 비슷했지만 너무 낯설었고 그 자리를 대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학전은 그대로였지만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김민기 연출은 세상을 떠났다.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봤던 몇편의 어린이 공연들
직접 김광석 공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20대 초반에 열심히 따라 불렀던 김광석의 노래들
학전이 아니었다면 지금 자신들이 그 자리에 있지 못했을거라 말하는 유명 배우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쩌면 김민기 연출을 간접적으로나마 교류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학전이란 이름 처럼
배움의 밭에서 열심히 그 공간에서 무엇이든 배우게 하고 배웠던 수 많은 가수, 배우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나와 구실을 할 수 있게 된 덕분에 나도 조금은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신기하게 학전이라는 극단 이나 학전소극장이라는 그 공간에서 배웠던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은
유명해진 것 같다.
어쩌면 학전과 김민기 연출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그 중에 유명한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흔히 말하는 잘나갔거나 잘나가고 있는 배우,가수 들이 학전 출신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고 무슨 이유가 분명 존재했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그 학전이란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무조건 유명해진다고 했다면
아마도 학전은 SM,YG,JYP,HYBE와 같은 매니지먼트 사업을 했어도 성공할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학전은 수많은 배우, 가수 와 같은 예술인들이 스쳐 지나갔던 곳이었다.
수 많은 씨앗들을 좋은 토양과 양분과 정성을 들여 싹을 틔워서 더 넓은 곳에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곳.
성장하다 주춤할 때 잠시 쉬면서 나아갈 힘을 얻어 나가는 그런 곳.
잘은 모르지만 학전이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학전에서 수많은 씨앗들은 세상으로 나가 화려하게 꽃과 열매를 열었을 것이다.
그 발아한 씨앗 중에서도 너무 잘 커서 너무 화려해지고 너무 흩날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김민기연출과 학전은 붙잡지 않고
또 다른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조그만 객석에서 돈이 안되는 어린이를 위한 공연을 꾸준히 올리는 작업을 한 걸 보면
주변 많은 사람들이 답답했을 것 같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돈도 안되는 어린이 공연....
경제논리에 맞지 않는 작업을 부단히 한 그곳 학전에는 김민기 연출과 학전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린시절 공연을 접하지 못했던 내가 나이가 들어 학전어린이공연을 접했을때
때맞춰 채워줬어야 했지만 채워지지 못했던 그 과거의 어느 공간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했을 때
학전이 하는 작업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됐던 것 같다.
김민기
곱고 똑바르고 평평하고 넓은 길로 편하게 걸어나갈 수 있는 인생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텐데
막연하고 불편하고 좁은 그 길을 무던히 닦아가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얼마나 어깨가 무거웠을까?
얼마나 깜깜했을까?
얼마나 막연했을까?
그리고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생각하셨을까...
김민기 선생님의 인생길의 끝에서 뒤돌아 보면
선생님이 학전 뿐 아닌 여러 곳에서 심은 씨앗들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또 씨앗을 퍼트리는 꽃밭이 되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꽃길과 꽃밭을 만들어 주신 故 김민기 선생님
오래전 어린이공연을 보면서 느꼈던 채움과 따뜻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어린이공연을 봤던 수많은 관객들의 가슴 속에서도
선생님과 학전에서 나눠주신 작은 꽃 한송이가 존재할 것 입니다.
이제는 기억과 추억이 되어야 하지만 좋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가끔 학전에 놀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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