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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10년 전 군대 이야기

군대에서 힘이 되어 주었던 잡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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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화장실에 있던 <좋은생각>이라는 잡지를 읽다가 

잊혀졌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 이 자세.. 이 분위기... 이 내용?

맞습니다. 군대에서 읽던 그 때 그 기억!


2000년 쯤에는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보급되던 시절이었기에 최첨단의 문화에 젖어들던 젊은 시절이었습니다.


인터넷! 편하고도 중독성이 무척 컸던 그것이었죠.


네 아무튼 군대 입대 하고 불편했던 것이라고 하면 핸드폰을 못쓰는 것과 컴퓨터를 못 하는 것이 불편한 것 순위 중 상위권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더 심하겠지요? 스마트폰을 못쓰는 것!이 어마어마한 순위권일 거라 생각합니다.


신병교육대에서는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동기들이기에 생활에 있어서 불편한 점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딜가나 꼭 그렇듯이 좀 껄렁껄렁한 사람들..

(비유를 하자면은.. 수학여행을 버스 타고 가면 맨 뒷자리에서 아이스크림 녹아드는 자세로 좌석에 앉아있는 아이들?)

그런 사람들이 청소를 분담할때 제대로 안한다거나? 이런 짜증남 정도는 있었지만. 


막상 자대배치를 받으면 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상급자였기 때문에 눈치도 많이 보이고 움직임 하나하나 불편했던 기억이 많았습니다.


부대마다 특성이 있겠지만

저희 중대 저희 소대는 예를 들어 일병 몇 개월까지는 책을 못 읽게 하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어느정도 계급까지는 앉아서 전투화를 못 신었고.. 

어느정도 계급까지는 사제 비누나 샴푸를 못 쓰게 했었고...

이런 저런 구분을 지어 놨었습니다.


왜 그런 구분을 계급에 따라서 다르게 해놨을까요?

제가 그런 구분을 만들어 놓지는 않았지만...

생활하면서 느낀 생각은 계급에 따른 권력을 구분해놓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예전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군대에는 구타가 굉장했다고 합니다. 

쓸데없는 구타였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 군대에서는 그 구타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줄 빠따! 이런 문화는 계급의 횡포를 잘 보여주는 문화였지요.

물론 그렇게 줄빠따를 맞아본 세대는 아닙니다.


줄 빠따! 이게 뭐지?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으니 간단하게 설명 드리면

다섯명의 구성원이 있습니다.

그 구성원들이 뭔가 잘 안돌아갑니다.

그래서 서열 1위가 나머지 4명을 때립니다. 

서열 1위는 열을 내면서 2위 3위 4위 5위를 때리고 씩씩거리면서 자러갑니다.


서열 1위가 들어가자 서열2위는 쓱 일어나면서 욕을 해대면서 1위가 놓고 간 빠따(야구빠따..그 외의 둔기)를 들어서 서열 3, 4, 5 위를 때립니다.

그리고 투덜거리면서 자러 갑니다.


서열 3위도 투덜거리면서 뭐라고 욕을 막합니다. 그러더니 빠따로 자기 밑에 4위와 5위를 때립니다. 그리고 또 자러 갑니다.


아.. 서열 4위 또 일어납니다. 위에 아무도 없으니.. 열이 오를데로 올랐습니다. 여기서 4위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왠만한 4위의 위치는 5위를 때리고 들어가서 잡니다.


마지막 남은 서열5위 엎드려 있거나 일어서거나 선택은 자유..

어찌되었건 엎드려 있는 것 보다는 일어나서 투덜거리면서 욕합니다. 본인은 화를 풀 곳이 아무데도 없습니다. 


대충 이런 시스템으로 돌아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보시다시피 여기에서 맞는 수에 따른 계급의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서열에 따른 절대권력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군대에 들어갔을 때에는 구타가 많이 없어진 시절이었습니다. 솔직히 전역할때까지 줄빠따.. 뭐 이런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그런 계급 서열에 따른 구분을 확실히 할만한 상징적인 것이 없어서 생활에 있어서 제약을 걸어 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는데요.

우선 그런 작고 수많은 행동제약 중 하나가 독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삼천포로 빠졌다가 간신히 돌아왔네요.)


내무반에서 책을 못 읽게 했기 때문에 책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장실에는 잡지들이 있었으니 기억나는 잡지가 <샘터>와 <좋은생각>이었습니다.

작고 얇은 것이 그리고 소설처럼 길지 않으니 볼일 보면서 짧게 짧게 읽기 좋았습니다.


화장실에서는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고.. 고참들 눈치를 안봐도 되기 때문에 계급이 낮을 수록 화장실에서의 기억 혹은 추억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화장실에서 라면 부숴먹고.. 편지도 읽고 책도 읽고.. 


그 만큼 화장실은 힘든시기에 위로를 해주던 곳이었습니다.

다리를 꼬지 말라는 행동제약에 사회에서 다리 꼬던 버릇으로 생긴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다리를 꼬아보던 이등병 시절..

소대 사람들 다 보기 싫었던 그 때 그나마 아무도 안보이게 해주던 곳이 화장실이었습니다.


그렇게 화장실에서 위로를 해주었던 것 샘터나 좋은생각과 같은 정말 긍정과 감동의 메시지가 가득했던 잡지들이었습니다.

잊고 살았지만 어느순간에 제 곁에 있었던 <좋은생각> 오랜만에 읽어 봅니다.

감동의 사연들이 가득합니다. 힘들었던 그 시절에도 이 잡지를 읽으면서 위로 받고 그랬는데.. 하는 생각도 납니다. 

아마 지금도 군대 화장실이나 내무반에 이 잡지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화장실에서 위로받고 있겠지요.


좋은생각 2012년 2월호에 실려있는 좋은 글 한번 옮겨 봅니다.


제목: 도저히 이해 못할 일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문명을 접해 보지 않은 남태평양 섬나라 원주민 다섯명을 초대해 영국 생활을 체험하는 방송을 했다.

다섯 남자는 난생처음 맥주를 마시고, 타이트클럽에 가며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영국인은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을 인공적으로 교미하고,

접시를 닦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그들은 농장 주인에게 물었다.


"그러면 대체 돼지들은 어디서 즐거움을 얻죠?"

"우리는 그런 것 모릅니다."


농장 주인은 소와 돼지를 늘리는 데만 급급했다. 이번에는 접시를 닦느라 분주한 부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오래 접시를 닦나요?"

"고급 접시라서요."

"접시를 닦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언제 가족과 대화를 나누죠?"

"비싼 접시는 설거지하는 데 오래 걸려요."


나뭇잎에 음식을 담아 먹고, 그 잎을 휙 던져 버리고는 그늘로 가서 가족,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이었다.

섬으로 돌아가는 날, 그들은 영국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돼지를 어떻게 키우든, 접시가 많든 적든, 당신들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처럼."


나뭇잎 한 장이면 족한 그들에 비해 우리는 많은 것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을 관리하느라 행복을 느낄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닐까.



오늘 휴일입니다. 가요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여자 가수들을 기다리면서 쉬고 있을 군인장병 여러분들이 떠오릅니다.

물론 전방은 지금 비상이겠죠. 날씨도 쌀쌀해지는데 고생이 많습니다.


군복을 입고 있는 당신들 덕분에 오늘도 편하게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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