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NTENTS/삶은 연극

연출가 임영웅 선생님... 고도를 만나셨나요?

반응형

지난주 5월 4일 저녁시간 빈둥거리며 핸드폰으로 세상 이야기를 접하는 중 임영웅 연출님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당연히 없겠지만 이 부고 소식은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만큼 가슴이 아팠다. 

 

소극장은 대학로에만 있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홍대역 인근에 위치한 산울림 소극장이라는 장소는 굉장히 의외의 장소였었다. 동그란 달을 반으로 쪼갠 것 같은 무대와 객석은 보여지는 반원의 반대편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생기게 했었던 공간이었다. 

http://www.sanwoollim.kr/

 

소극장 산울림

소극장 산울림 설명

sanwoollim.kr

 

 

그 언젠가 산울림 소극장에서 봤었던 <고도를 기다리며> 작품은 

배경이 동양인지 서양인지 과거인지 현재인지 아니면 미래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솔직히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작품이었다. 

막연히 고도를 기다리며 두 사람 아니 다섯 사람이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부조리 연극이라고도 하는데 부조리라는 말이 아무생각없이 쓰면 자연스럽게 쓰고 알아먹는 말이지만 막상 어학사전 같은 곳을 뒤적거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단어였다(물론 개인적으로 그랬단 말이다)

 

부조리라는 말은 비합리적이거나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성질 혹은 행위라는 말로 많이 쓰여서 

부조리 연극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아주 못되먹은 이야기를 담고 있나 싶었었다. 

 

하지만 위키백과에서 부조리를 찾아보면

철학에서는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을 뜻한다고 말하는 것을 뜻한다고 보면

부조리 연극은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부조리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어두침침한 무대 한가운데 시종일관 마치 지팡이 같아 보이기도 하는 나뭇잎 하나 없는 앙상한 나무 한그루가 있고

그 앞에서 찰리채플린 같은 복장을 한 배우들이 참 많은 대사를 쏟아낸다. 

 

그 수많은 대사들은 일일이 나열하지 못할 정도로 많았고 기억도 나질 않았다. 

저 수많은 대사들을 일일이 암기하고 입으로 이야기하는 배우들이 대단해 보이기만 했었다. 

 

작품을 보면서 종종 나는 왜 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있을까?

그냥 뛰쳐 나가면 어떨까? 하는 망상도 했었던 것 같다. 

 

끝이 나질 않는 이 사람들의 대화의 끝에는 항상 고도라는 것이 존재했고 그 고도는 신인지 사람인지 도대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언젠가 끝나는 이 연극의 커튼콜에 받는 박수일지도 모르겠고

산울림 소극장이란 세계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그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부조리연극은 갑갑하고 답답하고 막연했다. 

 

그리고 이 연극을 보고 나서 내 마음 속에는 앙상한 나무 한구르가 자리 잡았다. 

어두침침한 마음 속에 지팡이 같은 그 앙상한 나무가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나무 앞에서 막연하게 그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것이 사람인지 신인지 행복인지 시간인지 휴식인지 그 막연한 기다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어떤 그 무엇인가 그 막연한 무언가를 말이다.

오늘은 올까? 내일은 오겠지? 

 

그리고 그렇게 막연한 반복을 반복하고 있다보면 

어느새  내 마음 속 그 앙상한 나무가 까마득하게 잊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고도를 기다리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 기다림은 영원할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오늘 안기다려도 내일 기다리면 되고

아니면 기다리지 않다가 가끔 생각 날 때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함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지난 5월 4일 임영웅 선생님의 부고기사를 보고 

먼지가 두껍게 쌓인 나의 앙상한 나무를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서 찾아 봤던 것 같다. 

 

나는 고도를 잘 기다리고 있었을까?

고도를 잊는 것도 인생을 하루하루 잘 살아나가는 것이었을까?

나는 그동안 참 많이 무기력해졌었다. 

 

연극 한편에서 부조리하게 대사를 나열하던 배우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찾는 고도가 무엇일까 같이 고민했었다. 

 

그리고 그 연극은 끝이 났고 

나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과연 나의 고도는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10년도 훨씬 전에 봤던 그 작품과 그리고 그 고민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나는 아직 나의 고도를 찾지 못해서 인지 모르겠다. 

지금보다 완벽한 일상 혹은 완벽한 인생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완벽함은 없기 때문에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고도를 쉽게 만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배우를 무대에 서게 해줬던 산울림 소극장 객석 가운데 뒷자리에 작은 불빛을 벗삼아 작품을 무대로 올리시던 큰 불빛이 하늘로 사라진 것 같다.

영원한 것은 없다. 아쉬움은 임영웅선생님을 더 가깝게 알고 지내신 분들이 더 클 것 이다. 

 

막연한 인생길에 쉼표와 물음표를 만들어 주었던 <고도를 기다리며>

아직 비루한 나의 인생에 조금은 의미를 찾게 만들어 줬던 공연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작품을 만나게 해줬던 연출가 임영웅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또 다시 고도를 기다려 보겠습니다. 

 

 

그 언젠가 산울림 소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다시 무대에 오를 때 

어느 객석에 앉아서 여쭙겠습니다.

 

선생님... 고도를 만나셨나요?

http://www.sanwoollim.kr/company/about

 

소극장 산울림

소극장 산울림 설명

sanwoollim.kr

 

출처:산울림소극장 홈페이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