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tory

2017년 10월 23일 존엄사 , 연명의료결정시범사업 실행

반응형

개인적인 복잡함을 나열한 글입니다. 

잘모르는 사람의 글을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017년 10월 23일에 연명의료결정시범사업을 실행하는 첫날이었다고 합니다.

연명의료결정이라.... 단어가 조금 어렵습니다. 

존엄사라는 단어는 조금 익숙한데요. 이 존엄사라는 단어 역시 조금은 헷갈리는게 사실입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상태가 좋은 시기에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 

숨이 멎기 바로 전에 생명을 연장하는 행위 (산소마스크나 심폐소생술 혹은 그 외의 생명을 연장하는 시술 같은 것)를 받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2018년 1월 15일까지 시범사업기간이고 2018년 2월 부터는 본격 시행이라고 합니다. 

죽음을 결정하는 것에 대한 문제는 많은 논란이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결정은 누가 해야 하는 걸까요?

종교는 없지만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만약에 누군가가 저의 죽음을 선택한다고 하면 굉장히 인생이 무기력 할 것 같습니다. 

가끔 꾸는 악몽에서 인질로 잡혀서 죽음을 기다릴때 그 초조함 그 이상일 것 같습니다. 


언젠가 몇 년 전에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하는 과정을 녹화한 영상을 유투브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오늘 다시 찾아 봤지만 다시 보는 내내 혼란스러운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영상 속 주인공은 뼈질환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인의 죽음을 선택했다고 하고요.

잠들면 깨어나지 않는 약을 제조하는 모습부터 영상은 시작합니다. 

약을 만든 사람이 계속해서 오늘은 무슨 날인지 물어보는 모습이나 그 과정을 녹화하는 행위 자체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막말로 스너프 필름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습니다. 

범죄를 기록하는 모습과 존엄사를 기록하는 모습은 죽음을 기록한다는 점에 있어서 비슷합니다만 죽음을 기록하는 것은 

아직 정서에 맞지 않았습니다. 


담담하게 오늘은 세상을 떠나는 날이라고 말하는 모습이나 제조된 약을 다 마시고 초콜릿을 먹는 모습이나 잠들기 전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모습은 도대체 이 영상은 뭐하는 영상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아직은 존엄사 안락사 이런 것은 낯설은 개념입니다. 

 



지난 2010년 행복전도사로 불리었던 최윤희씨의 자살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희망을 이야기 하셨던 TV에서 항상 웃으시던 모습으로 기억되는 그 분의 자살 소식은 많은 사람에게 힘을 주셨던

그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을리 없다는 의문을 갖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뉴스를 읽다보면 '전신성 홍반성 루프스'라는  난치성 질환으로 고생을 하셨었다고 합니다.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죽음을 선택하셨던 것이고요. 

남편 분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죽음을 도와주었던 남편 분 역시 곧바로 세상을 떠나시는 선택을 하셔서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세상을 떠나보내는 마음과 떠나는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무거웠을지 두 분만 아시겠지만 생각하면 할 수록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링크

여성노인에 대한 영화<죽여주는여자>를 보고 http://lifehotstory.tistory.com/621

 

예전에 보았던 영화<죽여주는여자>에서는 조력자살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나왔었습니다.

비록 영화였지만 보는 내내 남의 일 같지 않은 미래의 제 모습 같은 생각도 들 정도로 사실감이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나이는 많고 몸은 불편하고 삶은 희망적이지 않은 그런 모습은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습니다.

 

존엄사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는 다는 것은 애매하기도 하고 논란의 여지가 참 많은 말이긴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죽음을 도와주는 모습이 여러번 나옵니다. 

치매에 걸린 노인은 더 정신을 잃기 전에 죽음을 선택합니다. 

병에 걸려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도 더 비참해지기 전에 죽여달라고 합니다.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죽음을 도와줬지만 살인죄로 구속이 되고 그녀 역시 쓸쓸한 죽음으로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저에게 존엄사라는 개념은 아직도 뭐라 확실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괜히 연명의료결정시범사업이란 것에 대해 글을 시작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만약에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을때 생명을 연장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떤 결정을 내릴까 싶기도 합니다.


본인이 아닌 가족의 긴 투병으로 연명의료결정을 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긴 투병기간으로 지친 가족들은 연명행위를 할지 안할지에 관한 선택의 순간에서 갈등을 할 것입니다.


몇년 동안 의식이 없다가 의식이 돌아 온 환자가 있었던 경우가 있기에  의식이 없는 환자의 보호자들은  연명의료결정은 더 어려운 결정이 될 것입니다.

물론 가족의 동의 뿐 아니라 의사의 동의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할 수 밖에 없겠지만 여러 금전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 일 경우에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기 쉬울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체계가 잡히지 않았기에 복잡하기도 하고 

아직은 죽음과는 멀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에 이런저런 고민의 흔적을 남겨봅니다. 


막연한 바람이 있다면

연명의료결정을 하게 되는 순간이 왔을 때

희망이란게 있어서 조금 더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고

경제적인 이유로 더 살릴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을 하게 만드는 선택을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