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슬픈연극을 보고 나서
제목부터 슬픈연극이다.
너무 솔직한 제목이다.
제목이 재미난 연극이나 웃기는 연극 보다는 무겁지 않으면서 가볍지 않은 묘한 제목인 연극이다.
이 연극은 극단 차이무의 작품이다.
언제부터인지 차이무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괜찮은 공연이지.. 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고 물어도 설득력 있게 설명은 못하겠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다.
물론 대학로 아니 전국의 극단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의 실력이 극단 차이무 배우들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극단 차이무의 묘한 색이 내게 잘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생은 희극인지 비극인지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비극 같지만 좀 떨어져서 보면 희극 같기도 하고
하루하루 희극 같지만 좀 떨어져서 보면 비극 같기도 하다.
제목은 슬픈연극인데 포스터에 있는 주인공들은 미소짓고 있다.
포스터 만으로도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 준다.
과연 이 세쌍의 주인공 중 누가 우리를 더 슬프게 만들어 줄까?
세번을 슬퍼 질 자신은 없다.
어쨌든 강신일 남기애 커플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강신일 배우는 영화에서 많이 본 배우기에 괜히 더 친근한 배우다.
공연 중 눈이 마주쳤을 때 인사 할 뻔 했으니 말이다.
남기애 배우는 연기 하는 모습이 내 기억 속에 없는 배우였다.
그래서 선입견 없이 연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공연의 내용은
장만호와 심숙자 부부의 이야기다.
큰 아이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나이가 된 중년의 부부다.
이제 자녀교육에 힘 쓸 시기는 지났다.
인생에 있어서 큰 일을 어느정도 다 끝내고 노후를 대비하며 지낼 나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장만호는 시한부 인생으로 보인다.
어느 병에 걸려 있는지는 모르겠다.
두 사람은 일상을 유지한다.
공연에서는 하루 정도의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무대 뒤쪽에는 빛의 변화로 시간을 나타내 준다.
장만호는 화초에 대한 설명을 책을 참조하면서 열심히 적어서 각각의 화초에 표시를 해두고 있다.
심숙자는 빨래를 정리하기도 하고 과일도 깎아주고
수 많은 일상의 한 장면 같다.
별로 특이할 것은 없다.
배우는 누군가가 나올듯 말듯 하면서 끝까지 아니 99퍼센트 두 배우만 나온다.
두 사람이 일상에서 얘기하다가 한 사람이 잠깐 자리를 비우면
남은 한 사람이 그들의 추억을 되새기는 이야기를 독백하는 진행방식이다.
두 사람이 교대로 독백하는 트윈모놀로그 형식이라고 보면 좀 있어 보이는 표현이 되겠다.
현실에 심숙자 장만호가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잠깐 심숙자가 자리를 비우면
장만호가 첫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심숙자가 다시 돌아와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장만호가 자리를 비우면
심숙자가 첫만남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식이다.
일종의 삼자대면 연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만호의 말도 들어보고
심숙자의 말도 들어보고
그 말을 정리하는 사람은 관객... 나 자신이다.
그렇게
심숙자를 두고 떠나야 하는
장만호를 보내기 싫지만 보낼 수 밖에 없는
중년의 장만호, 심숙자 부부의 이야기이다.
어느 누구도
장만호, 심숙자 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인생은 태어나면서 부터 시한부 인생 아니던가?
시기의 문제일 뿐,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게 운명이니 말이다.
부부의 이야기이면서도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야 하는
사람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극이다.
슬픔을 강요하는 연극은 아니었다.
피식 피식 웃겨주는 배우들의 대사
조금은 어설펐지만 그들끼리의 놀이였던 만담
웃기면서도 슬픈 그런 희비가 엇갈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살짝 먹먹하고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공연이었다.
바람이 선선해지는 가을
주변 사람을 돌아보게 할 공연이었다.